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노회가 지시한 어느 교회의 임시당회장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주일 3부 예배 시 담임목사가 공석인 그 교회강단에 섰습니다. 성도님들에게 미안함과 양해를 구합니다. 이번 주로 마감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니 강력한 기도의 동역을 부탁합니다. 목사는 혜림교회를 비우고 주일에 다른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이 너무도 어색하고 또 불편합니다. 모쪼록 노회의 지시를 받아 간 교회가 빨리 수습되고 성숙과 성장의 길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생명체는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도록 지어졌습니다. 동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아갑니다. 어항에 ‘구피’라는 작은 물고기를 한동안 길렀는데 암컷은 종일 먹이를 찾아 어항 속을 다녔고 수컷은 종일 그 암컷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들은 어항에 처음 생긴 날부터 어항이 사라지는 날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동물의 왕국’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초식동물들은 풀과 물을 찾아다니고 육식동물들은 그 초식동물들을 따라다닙니다. 동물들에게 삶은 그런 것입니다.
사람 역시 무언가를 위해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그것이 돈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명예든, 사상이든…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살아야 삶이 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인생은 공허해지고 살아야하는 이유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먼저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입지(立志)’라고 불렀습니다. ‘뜻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삽니까? 또 무엇을 위해 살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것 같습니까? 성경은 빌레몬서를 통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달려온 한 노인과 그의 아들 디모데의 신앙고백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빌레몬서1:1)
‘그리스도를 위하여’가 바울과 디모데가 살아온 성공적인 인생의 푯대였습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무어나 할 수 있어…’한때 크게 유행한 노래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무엇을 하든, 어떤 장소에 있든지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고 그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집니다. 바울은 그 대상이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그분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바울에게는 먹는 것도 설교도 여행도, 교제도, 고통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주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은…’
저는 소원합니다. 제가 그리고 혜림교회 성도들이 다 바울처럼 예수에게 빠진 사람들이 되기를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것을 편지의 제일 첫 머리에 올리는 바울처럼, 예수그리스도와의 사랑에 빠지고 그 예수에게 눈이 멀어서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살다가 하늘에서 만납시다. 거기서 우리는 그때 우리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의 종
김영우 목사

담임목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