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10:13)
몇 해 전에 우리교회에 와서 요셉총무를 비롯한 학생들에게‘믿음의 가치’를 심어준 이승복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미국에 단 2명밖에 없는 사지마비 장애를 가진 의사인 그는 그때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 젊은이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8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고달픈 이민생활을 하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체조에 몰두했고 마침내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전미 올림픽 예비 군단 최고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이 예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습도중에 공중낙법을 하다가 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경추 아래의 거의 모든 신경이 끊어진 것입니다. 병원으로부터 재기 불능이라는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체조 하나를 보고 달려온 그의 모든 것이 끝이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10년간 휠체어에 앉은 채 의학공부를 시작합니다. 손가락마저 움직이기 힘든 사지마비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처음에는 그의 주치의조차 말렸습니다. 그러나 10년 만에 그는 아이비리그 대학인 다트머스대학 의대와 하버드대학 의대를 거쳐 의사가 됩니다. 미국에서 두 명밖에 없는 의사이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슈퍼맨 닥터 리(이승복: 미국명 로버트 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그는 세계최고의 병원인 존스홉킨스 병원의 수석 의사가 되었습니다.
故 강영우 박사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열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연이어 가정의 가정역할을 하던 어머니와 누이가 목숨을 잃습니다. 병과 과로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자살도 여러 차례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목사님을 만난 뒤 ‘갖지 못한 한 가지를 불평하기보다 가진 열 가지를 감사하자’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서울맹학교와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의 어느 재단의 도움을 받아 유학생으로 도미합니다. 그로부터 3년 8개월 만에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 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계 미국인으로 최초로 미국 교육부 산하 전국장애인자문협회 의장으로 임명됩니다. 차관의 지위였습니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교회에 가서 자신의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인생의 삼중고인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고난이 끝이 아닙니다. 2020년, 결코 만만치는 않겠지만 우리에게는 이승복과 강영우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복된 명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의 종
김영우 목사

담임목사칼럼